제53회 한산대첩의 백미 "한산대첩 재현" 장면 열려

김원창 기자 | 기사입력 2014/08/16 [22:38]

제53회 한산대첩의 백미 "한산대첩 재현" 장면 열려

김원창 기자 | 입력 : 2014/08/1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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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부

제53회 한산대첩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있는 한산대첩 재현이 16일 동호동 이순신 공원앞 한산도 해상에서 재현되었다.

한산대첩 재현을 보려고 찾아온 수 많은 인파는 이순신 공원 곳곳에 오전부터 재현장면에 보기좋은 자리를 정하고 가족끼리 모여 역사적인 한산대첩의 재현을 기다렸다.


이군현 국회의의원 내외와 김동진 통영시장 내외를 비롯한 김윤근 경남도의회의장과 강혜원 통영시의회의장, 천영기 도의원등 선출직 의원 모두 참석하여 자리를 끝까지 지켰으며, 특히 이날은 김동진 통영시장의 연세대학교 후배인 영화 "명량" 의  김한민 김독도 초청되어 통영을 찾아 재현을 시민과 함께 관람했으며 본지에 김한민 감독의 통영을 찾은 소감과 구상을 들을 수 있다.




한편 한산대첩은 임진왜란 당시 파죽지세로 평양까지 점령했으나 보급로가 막혀 왜군을 철수시켰을 많큼 큰 의미를 둔 역사상 4대해전으로 꼽힌다.

당시 왜적들은 김해에서 일본수군 장수들이 모여 연합함대를 구성하고 있을 때 세력이 가장 큰 함대를 거느린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전공을 탐내어 단독으로 출전하여 전라좌수영을 공략하기 위해 거제 견내량에 도착한다.


일본수군이 대규모 수군부대를 편성하여 남해진출을 꾀한다는 정보를 접한 이순신장군도 부산방향으로 진출하기 위해 전라우수사 이억기, 경상우수사 원균과 함께 출전하여 당포에 도착한다.

이 때 피란하여 산에 올랐던 당포목자 김천손으로 부터 오늘 오후 2시경 왜 적선 70여척이 영등포를 지나 견내량에 정박하고 있다는 정보를 듣게 된다. 이순신은 막하장수들과 논의하여 견내량은 물목이 좁아 전투하기 힘든 곳이므로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여 학익진을 펼쳐 적을 공략, 한산대첩의 승리를 이룬다.     
      

한산대첩은 이순신장군이 이끄는 조선수군 연합함대와 일본 최강의 전투력을 보유한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일본수군 함대와의 전략.전술을 겨루는 총력전 이었다.조선으로서는 국가의 존망이, 일본에는 전쟁의 승패가 걸린 물러설 수 어보는 한판 대 해전이었다.

만약 이 해전이 일본의 승리로 돌아가 일본이 제해권을 장악하고 남해를 돌아 서해로 진출하였다면 일본은 수륙병진하여 조선을 점령하고 명나라로 진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겪었던 국권피탈(1910년)의 치욕스러운 역사는 어쩌면 300여년 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산해전에서 패한 일본수군은 “앞으로 이순신 함대와는 싸움을 피하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엄명을 받게 된다.
한산대첩은 임진왜란 7년 전쟁 중 의기양양했던 왜적의 기세를 여지없이 꺽어 놓음으로써 전쟁의 방향을 조선의 승리로 돌려놓은 분수령이 되는 승첩이었다.


왜적들은 이 해전을 통하여 제해권을 장악한 연후에 평양을 점령하고 있던 고니시 유키나카 부대와 합류하여 명나라로 진격하려했다.

그러나 이 해전에서의 패배로 보급로가 차단되어 전쟁발발 1년 후 평양까지 진출한 고니시 유키나카 부대를 포함한 모근 왜적은 애서 점령한 조선의 수도 한양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이충무공의 위대한 승리 한산대첩을 기념코자 1962년부터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에서 해마다 축제를 열어 승첩을 기념하고 있으며, 올해로 축제 53주년이 되는 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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