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열 칼럼] 경계해야 할 적당주의

김원창 | 기사입력 2023/03/17 [15:09]

[강성열 칼럼] 경계해야 할 적당주의

김원창 | 입력 : 2023/03/17 [15:09]

▲ 강성열 칼럼리스트

구약성서의 일곱 번째 책인 사사기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여호수아가 죽은 후의 이스라엘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가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여호수아 이후의 시대가 어떠한가는 사사기 17장 6절(21:25)에 잘 압축되어 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말씀에 의한다면,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은 일종의 무정부 상태(anarchy)에 있었다.

비록 사사들의 활동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이스라엘 12지파 전체에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이스라엘 백성은 사사들이 있을 때만 하나님을 잘 믿는 척했지 사사들이 없을 때에는 자기들 멋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2:11-13).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의 이스라엘 공동체는 정치적인 이념에 의해 모인 정치 집단이 아니라 순전히 야웨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모인 신앙 공동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은 결속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들을 한데 묶어줄 구심점이 없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기는 했으나 신앙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을 강제하는 요소가 약한 까닭에, 그것만으로는 12지파 전체를 튼튼하게 묶어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제멋대로 행동하게 되었고 이것이 결국 무정부 상태와도 같은 무질서와 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에 있었다. 사사기 1장이 그 원인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1장 19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이 많은 가나안 원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여 그들과 섞여 살았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힘에 부쳐서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낼 수 없었다(unable)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그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은’ 것이었다. 히브리어 원문은 바로 이러한 뜻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누가 보아도 쫓아내지 ‘못한’ 것과 쫓아내지 ‘않은’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못한’ 것에는 타의적인 요소가 적지 않게 있지만, ‘않은’ 것에는 자의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않은’ 것에는 ‘이 정도로 그만하자……적당하게 끝내지 뭐’하는 식의 의도가 진하게 깔려 있는 셈이다.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빗나간 삶을 산 것은 바로 이 적당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 적당주의 때문에 가나안 사람들과 섞여 살게 되었고 그 결과 가나안 사람들의 문화와 종교에 깊이 빠지고야 만 것이다. 그들이 줄기차게 하나님 아닌 것들(우상)-특히 바알(Baal) 신-을 섬긴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탈선은 적당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그렇다면 사사 시대 초기에 나타난 이 적당주의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이것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사사기 앞의 책인 여호수아서의 내용을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매우 성공적으로 약속의 땅에 정착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의 성공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에 힘입은 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여호수아서는 하나님의 은총과 권능을 강조하는 책인 것이다.

반면에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실패와 좌절에 관한 책이다. 사사들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 반복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이스라엘의 범죄와 실패가 그 배후에 깊게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할 때에는 모든 것이 형통하였고 꾸준한 성공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교만하여져서 자기들 멋대로 하고자 했을 때 적당주의가 왔고 범죄와 실패가 연속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마냥 잘 될 때가 잘 안될 때보다 더 정신 차려야 할 때임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잘 될 때일수록 더욱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성공과 번영을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는 날에는 모든 것이 끝장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그러지를 못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실패-성공 뒤에 나타난 적당주의-에서 우리는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바울 사도의 권면을 생각하게 된다(고전 10:12). 여호수아서에서와 같은 순전한 신앙과 그로 인한 성공이 있은 다음에는 언제나 사사기에서와 같은 적당주의와 그로 인한 실패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이 잘 될 때에나 잘 안 될 때에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여야 한다. 절대로 자신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신앙을 훼방하는 악의 요소를 우리의 마음과 생활 속에서 부지런히 ‘쫓아내야만’ 한다. 쫓아내지 ‘못하는’ 날에는 ‘쫓아내지 않은’ 사사 시대의 실패와 좌절이 있을 것임을 늘 기억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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