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단풍이 짙어가는 늦가을에 통영시재향군인회가 2024년 안보견학으로 경북영덕군에 다녀왔다. 大게로 유명한 경북영덕군은 통영에서 꽤나 먼 거리에 있어 아침7시출발하여 첫번째 견학지인 장사상륙작전기념관에 11시에 도착 간간히 정성스레 준비한 간식으로 입도 호강했다.
또한 지루할 수 있는 거리이지만 동해안 7번국도를 따라 시원하게 쭉 뻩어 있는 동해바다를 보고나니 주중에 쌓여있던 스트레스와 함께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하여 지루한줄도 모르게 목적지에 온듯 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바다위에 위치한 장사상륙작전기념관앞 바다는 장사해수욕장이고 장사상륙작전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피서철에는 가족단위 여행객이 엄청나게 붐빈다고 하는데 늦가을인 오늘도 캠핑야영객들도 보이고 바다주변에 사람들이 제법많았다
장사상륙작전기념공원은 장사해수욕장 한편에 위치한 공원으로 장사상륙작전에서 희생된 장병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공원으로 충혼탑도 있었다. 영덕군해설사님의 해설과 함께 충혼탑앞에서 묵념을 하고 영덕군의회 의장님, 부의장님의 환영인사말씀을 듣고 장사상륙작전기념관을관람하였다
ㅡ장사상륙작전기념관은 6.25전쟁당시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되었던 군함인 문산호를 그대로 복원해 만든 기념관으로 과거 한국전쟁에 대한 아픔을 추모하며 상기할수 있는곳이다 기념관 내부는 총3층 규모로 꽤 넓었다.
장사상륙작전은 1950년 9월14일~19일까지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서 일어난 전투였다.
당시에 인천상륙작전 못지않게 낙동강동부전선에서 일어나는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였다 하지만 병력이 모자랐고 급기야 정예부대가 아닌 어린 학도병 772명으로 구성된 독립유격대 제1대대를 장사리해안으로 상륙하는 작전을 세운것이다. 장사상륙작전은 1950년 9월14일~19일까지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서 일어난 전투였다.
당시에 인천상륙작전 못지않게 낙동강동부전선에서 일어나는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였다 하지만 병력이 모자랐고 급기야 정예부대가 아닌 어린 학도병 772명으로 구성된 독립유격대 제1대대를 장사리해안으로 상륙하는 작전을 세운것이다. 1950년 9월14일 오후4시 유격대원을 태운 문산호를 부산항에서 출발시켜 15일새벽 장사리해안에
도착하였지만 태풍이 몰고 온 심한 파도에 문산호는 좌초되고 만다 이때 장사리를 점령하고 있던 북한군의 빗발치듯 날아든 총탄에 맞선 10시간의 사투끝에 장사리상륙을 성공시켰다. 상륙한 유격대원들은 6일간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였고 상륙사흘만인 19일에 부상자110명을 포함한 640여명이 대기중인 조치원호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장사상륙작전은 성공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국군 학도병139명이 전사하였다 결과적으로는 장사상륙작전은 북한군의 후방을 교란하여 보급로를 차단시켜 북한군 대부대를 유인하여 전선의 위기를 극복하였다 6.25전쟁당시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되었던 군함인 문산호를 그대로 복원해 만든 기념관으로 과거 한국전쟁에 대한 아픔을 추모하며 상기할수 있는곳이다.
기념관 내부는 총3층 규모로 꽤 넓었다.
장사상륙작전은 1950년 9월14일~19일까지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서 일어난 전투였다.
당시에 인천상륙작전 못지않게 낙동강동부전선에서 일어나는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였다. 하지만 병력이 모자랐고 급기야 정예부대가 아닌 어린 학도병 772명으로 구성된 독립유격대 제1대대를 장사리해안으로 상륙하는 작전을 세운것이다.
1950년 9월14일 오후4시 유격대원을 태운 문산호를 부산항에서 출발시켜 15일새벽 장사리해안에 도착하였지만 태풍이 몰고 온 심한 파도에 문산호는 좌초되고 만다. 이때 장사리를 점령하고 있던 북한군의 빗발치듯 날아든 총탄에 맞선 10시간의 사투끝에 장사리 해변에 상륙을 성공시켰다.
상륙한 유격대원들은 6일간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였고 상륙사흘만인 19일에 부상자110명을 포함한 640여명이 대기중인 조치원호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장상상륙작전은 성공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국군 학도병139명이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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